*블로그 담당자가 글을 요약하고 관련 수업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사실과 다르거나 저자의 의도와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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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으로 National Cultural Center 건립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냉전시대 미국의 대통령의 연설문을 통해 당시 국가의 방향성, 예술에 대한 국가의 기조를 살펴볼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냉전체제와 경제발전 상황에서 각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되려는 열망을 품었고 또 소련은 물론 유럽에도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소련은 발레와 오케스트라 등 클래식 아트에 강한 국가였고, 이에 반대급부인지 미국은 리버럴아트에 집중했다.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은 그 정당성을 문화복지에서 얻을 수 있다. NEA 설립 시에도 'for Betterment People' Life'를 프레이즈로 하여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문화예술을 통해 이룩하고자 했다. 사실 NCC는 케네디가 처음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본문에도 나와았다시피 루즈벨트 대통렬 시절부터 논의가 되었던 것으로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의 영부인에게서 최초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 예술 분야의 뉴딜 정책이 케네디 시대에 더 크게 확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정부의 문화예술지원은 외부적으로는 국가의 건재함을 알리는 선전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이 글이 쓰였던 냉전시대에 예술에 투자하는 것은 국가의 안정감과 복지를 외부에 알리는 효과가 있다. 여기서 예술은 사회의 상징물로 작용한다.
이런 정부의 지원은 문화예술단체엔 꼭 필요하고 중요한 재원이다(*예술단체 지원의 정당성은 다음에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예술이 지원금으로 인해 예술적 자율성을 침해당할 수 있는 위험이 항시 존재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달리말해 국가의 입맛에 맞는 예술이 지원을 잘 받을 수 있는 구조로 인해 문화적 보수주의가 구축될 수 있다. 한 가지 가정으로 어떠한 아방가르드한 예술가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예술활동을 한다면 전복적인 예술을 하며 체제의 혜택을 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고, 그가 지원을 받지 않고도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면 아방가르드한 예술이 지원없이도 가능한 셈이 된다(*예술가들이 투잡을 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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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케네디는 이 연설문을 통해 국가가 예술을 지원하고 나아가 국가가 주도하여 문화예술센터를 건립하는 일의 정당성을 표명한다. 그는 현재의 경험과 미래의 비전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이 예술이며, 예술을 통해 미국의 자유와 다양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보았다. 또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며 더 액티브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대통령의 연설문은 그 전후상황과 정치적 환경을 함께 살펴볼 때 연설문에 담긴 문화예술에 대한 방향성을 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 주도의 문화예술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정책을 연구할 때 연설문을 보아 논문을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